`암 이길 거예요 … 꿈이 있거든요` [중앙일보]
빡빡머리·마스크·링거액 … 암 투병 어린이 뜨거운 공부열   
 암에 걸려 치료 중인 한 학생이 경남 창원시 두대동 집에서 ‘꿈사랑 사이버 학교’의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해 교사로부터 원격 온라인 교육을 받고 있다.창원=송봉근 기자 
 
"너무 아파요. 그래도 공부할래요."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오후 경남 창원시 두대동 창원종합운동장 내 106호실 '꿈사랑 사이버 학교'. 어린이 암환자들에게 국어 화상수업을 하던 박희진(26.여) 교사는 컴퓨터를 통해 흘러나오는 이지은(8.울산격동초등 1년)양의 말에 가슴이 찡했다. 지은양은 현재 서울 아산병원에서 백혈병 치료를 받으면서 화상 수업을 듣고 있다.

지은양은 좀 전에 수업을 듣다가 갑자기 "힘들어. 친구들하고 같이 공부하고 싶은데…"라는 말을 남기고 화면 밖으로 사라졌다. 깜짝 놀란 박 교사가 "지은아, 괜찮니?"라고 부르자 어머니 권영숙(36)씨가 "약물 치료를 끝낸 지은이의 체온이 40도가 넘어 말렸는데도 수업을 듣다가 힘들어한다"고 답해 주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지은양이 다시 PC 앞에 앉았다. 권씨는 "지은이는 완치돼서 더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며 책을 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꿈사랑 사이버 학교는 소아암을 앓고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는 '희망의 학교'다.

현재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전국의 암환자 학생 220명이 재학 중이다. 학생들이 치료받느라 병원에 입원해도 이 사이버 학교에 등록하면 정규 수업으로 인정한다.

지난해 8월 개교한 뒤 오후 3~8시의 하루 6교시 동안 40분짜리 국어.영어.수학 등 5과목을 가르친다. 11명의 교사가 한 번에 5~6명의 학생과 온라인으로 연결, 수업을 한다. 웹카메라로 서로의 모습을 보면서 질의.응답도 해 수업 열기는 뜨겁다.

교사들 앞에 놓인 모니터에는 빡빡머리에 마스크를 쓴 어린이, 링거액을 주렁주렁 단 어린이의 모습이 뜬다. 이들은 힘든 약물치료 후 지쳐 잠을 자다가도 알람시계 소리에 일어나 수업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열성적이다.

이 학교를 만든 '더불어 하나회' 안병익(46.삼성중공업 근무) 회장은 "아이들이 공부에 빠질수록 삶에 대한 의지도 강해진다"고 말했다.

김아지(20.여)씨는 만성골수성 백혈병과 구강암 등으로 7년째 치료받으면서 사이버 학교 덕분에 고졸 과정까지 마쳤다. 내년엔 대학에 진학해 영어교사가 되는 게 꿈이다.

암을 이기지 못하는 학생도 있다. 지난해 8월 사이버 학교가 개교한 뒤 지금까지 18명이 하늘나라로 갔다. 지난해 말 숨진 윤모(당시 13세.중 1년.마산 거주)군은 수의 대신 교복을 입고 이 세상을 떠났다. 윤군의 어머니(44)는 "아이가 생전에 학교에 가고 싶어해 교복을 입혀 보냈다"고 눈물지었다.

양서운(25.여) 교사는 "수업을 함께 듣던 학생이 안 보이면 아이들은 다 눈치 채지만 그럴수록 병을 이겨내겠다는 의지를 보여 감동하게 된다"고 말했다.

창원=김상진 기자 <daedan@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 꿈사랑 사이버 학교(www.nanura.org)=백혈병 어린이 후원사업을 위해 1990년 9월 출범한 '더불어 하나회'가 2003년 5월 무료 화상수업을 시작한 것이 모태다. 지난해 6월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위탁교육기관으로 지정을 받았다. 운영비는 교육인적자원부 지원금과 기업 후원금 등 5억원으로 충당한다. 사이버 학교에 등록하려면 지역 교육청에서 '건강 장애 학생'으로 인정받으면 된다. 교육비.교재비는 무료. 055-266-4416.
 

[daedan@joongang.co.kr]   
 
2007.05.05 04:35 입력